제목 20150531 네가 무엇을 원하는가(마가복음10장 46~52절)
작성자 koreabaptist
작성일자 2015-05-31
조회수 9160

제목: 네가 무엇을 원하는가?

성경: 마가복음 10장46~52절

설교: 김만섭 목사

일시: 2015년 5월 31일(일) 11:00

장소: 영동교회

  <?xml:namespace prefix = "o" ns = "urn:schemas-microsoft-com:office:office" />

46. ○그들이 여리고에 이르렀더니 예수께서 제자들과 허다한 무리와 함께 여리고에서 나가실 때에 디매오의 아들인 맹인 거지 바디매오가 길 가에 앉았다가 47. 나사렛 예수시란 말을 듣고 소리 질러 이르되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거늘 48. 많은 사람이 꾸짖어 잠잠하라 하되 그가 더욱 크게 소리 질러 이르되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는지라 49. 예수께서 머물러 서서 그를 부르라 하시니 그들이 그 맹인을 부르며 이르되 안심하고 일어나라 그가 너를 부르신다 하매 50. 맹인이 겉옷을 내버리고 뛰어 일어나 예수께 나아오거늘 51. 예수께서 말씀하여 이르시되 네게 무엇을 하여 주기를 원하느냐 맹인이 이르되 선생님이여 보기를 원하나이다 52. 예수께서 이르시되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하시니 그가 곧 보게 되어 예수를 길에서 따르니라.

 

▣핵심구절

51. 예수께서 말씀하여 이르시되 네게 무엇을 하여 주기를 원하느냐 맹인이 이르되 선생님이여 보기를 원하나이다.

 

맹인 거지가 없는 나라, 맹인 거지가 없는 교회, 맹인 거지가 없는 가정이 되기를 축원한다.

 

1. 디매오의 아들이 예수님을 만나기 전의 모습

1) 바디매오(Bartimaeus)는 디매오의 아들이라는 말이다.

복음서에는 예수님께서 시각장애인을 치유하신 사건이 여러 번 나오는데(마 9:27-31; 20:29-34; 눅 18:35-43; 요 9:1-7) 소경의 이름을 밝힌 곳은 마가복음 뿐이다.

 

2) 디매오의 아들은 시각 장애인이었다(막 10:46).

보지 못한 이들을 시각 장애인이라고 한다. 시각 장애인은 신체적으로나 영적으로 장애를 가진 사람을 의미한다.

보고 싶어도 못 보는 사람, 멀리는 보지 못하고 눈앞의 문제만 보이는 사람, 남의 문제는 보고 자기문제는 못 보는 사람, 확실하게 보지 못하고 흐릿하게 보는 사람, 한쪽 문제만 보이는 사람, 문제의 핵심을 못 보는 사람, 신앙의 본질을 보지 못하는 사람, 예수님을 보지 못하는 사람이 있다. 디매오의 아들은 예수님이 보이지 않는 사람들을 상징한다.

 

3) 디매오의 아들은 여리고의 거지였다(막 10:46).

국어사전에서 거지란 말은 남에게 빌어먹고 사는 사람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거지는 다른 사람의 도움 없이는 못사는 사람이다. 경제적으로 매우 어려운 사람이었다. 사람이 경제적으로 어려우면 앞이 더욱 보이지 않는다. 앞이 보이지 않아 분별하지 못하고 멀리 보지 못하고 전부를 보지 못하고 부분적으로만 보게 된다.

 

디매오의 아들은 예수님을 만나 그의 삶이 변화되었다.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가 되었다.

 

 

2. 디매오의 아들이 예수님을 만나는 과정

1) 디매오 아들은 나사렛 예수의 소식을 들었다(막 10:47).

거지 시각 장애인 디매오의 아들은 스스로 장애에 함몰되지 않았다.

자신을 파괴하는 것은 악의 세력에 놀아난 것이다.

사탄 마귀는 파괴자이다. 관계를 파괴하고 진리가 무너지게 한다.

믿음이 무너지게 한다. 디매오의 아들은 자신의 약한 부분이 자신의 전부를 망가지게 하는 행동을 하지 않았다. 자신의 장애와 거지로 구걸하는 비참한 삶이 자신을 무너지게 하도록 두지 않았다.

 

2) 디매오 아들은 나를 불쌍히 여겨달라고 간청하였다(막 10:48).

무리들은 나사렛 예수라고 웅성 거리는데 이 사람은 혼자서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라고 소리 질렀다. 나를 불쌍히 여겨달라는 그의 요구는 하나님의 긍휼하심을 얻는 유일한 통로임을 알리고 있다.

다윗의 자손 예수는 당시 유대사회의 대중적인 메시야 신앙을 반영한 것이다(사 11:1~3; 렘23“5~6; 겔34:23~24).

마음에 있는 것을 말로 글로 상대에게 소리로 표현하라.

형편과 사정과 필요를 표현하라. 아픈 마음을 표현하라. 자신의 마음을 전하라.

 

3) 사람들의 방해를 극복하고 예수께로 나아갔다(막 10:48)

여기서 외쳤다는 말은 단순히 외친 사실을 기록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47절에서 외치기 시작하여 지금까지 계속적으로 외치고 있음을 나타낸다.

다윗의 자손이 나를 불쌍히 여겨 달라고 계속해서 외쳤다. 사람들이 막으면 더 외쳤다.

사람들의 장애가 있다. 열등감이 있었다. 자신의 내면의 장애가 있다. 스트레스가 있었다. 비웃음과 무시와 비난과 조롱과 따가운 눈총이 있었다.

 

3. 디매오의 아들이 예수님과 만남

1) 예수께서 부르셨다(막 10:49).

들음과 들음이 만날 때 역사가 일어난다.

예수께서 소경이 부르짖는 소리를 들으시고, 소경이 예수의 소리를 들었다.

 

2)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막 10:52).

단순히 육안의 눈이 보게 되었다고 하지 않고 네 믿음이 너를 구원을 받았다고 말함으로써 그가 예수의 정체성을 깨닫고 믿음으로 하나님의 구원을 체험하게 한다.

 

3) 무엇을 하여 주기를 원하느냐(막 10:51)

예수께서 소경 거지에게 소원을 물었을 때, 바디매오는 자신의 소원을 분명하고도 간단하게 말했다. 바디매오의 소원과 대답은 간단명료하였다. '내가 볼 수만 있다면 좋겠습니다.'이다. 기도는 분명하고 간단해야 한다. 또 하나님 앞에 우리의 대답은 항상 분명하고 간단해야 한다. 간절한 소원을 품으라.

야고보와 요한은 예루살렘에 가면 제자들은 한자리를 부탁하는 상태이다(35~45).

 

4. 디매오의 아들이 예수를 만난 후의 변화

1) 자기의 겉옷을 버리고 예수께로 달려왔다(막 10:50).

예수의 사도들이 부르심 받을 때 배와 그물과 족을 두고 즉시 예수를 따라 갔다.

 

2) 보게 되었다(막 10:52).

여기서 눈을 떠서 보게 하는 것은 예수의 정체와 예수의 길의 본질을 깨닫게 하는 것을 의미한다. 여기서 소경은 예수의 참다운 가치, 예수에 대하여 눈을 뜨는 것을 의미한다.

 

3) 예수를 길에서 따라갔다(막 10:52).

죽음이 기다리는 예루살렘을 향하여 가는 길인데도 예수께서는 그를 바라는 불쌍한 인생을 그냥 지나치지 않으셨다. 이 대목은 그렇기 때문에 단순히 소경 거지의 눈을 뜨게 하였다는 그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저가 곧 보게 되어 길에서 예수를 쫓으니라는 말씀은 예수에 대한 눈을 뜨고 그의 길을 따라가는 제자직의 본을 보여주고 있다.

중요한 것은 바디매오가 자신의 믿음을 통한 예수님의 은혜로 눈을 뜨고 나서 물러가지 않고, 예수님을 따라 나섰다는 점이다. '좇으니라'(hjkolouvqei에콜루데이)란 그가 계속적으로 좇았음을 암시한다. 바디매오의 따름은 영생을 구하며 거창하게 예수님께 다가왔던 젊은 부자와 묘한 대조를 이룬다.

정상인으로 회복되었다. 이것은 정체성을 회복하라. 인간의 사명회복이다. 이제 눈을 뜨고 소경거지 버리고 예수를 따를는 인생이 되어라. 이것이 소경의 소원이었다.

 

 

 

첨부파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