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바람과 바다를 잔잔하게 하시는 예수님
성경: 마가복음 4장 35-41절
설교: 김만섭 목사
일시: 2015년 2월 22일(일) 11:00
장소: 영동교회
<?xml:namespace prefix = "o" ns = "urn:schemas-microsoft-com:office:office" />
35. ○그 날 저물 때에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우리가 저편으로 건너가자 하시니 36. 그들이 무리를 떠나 예수를 배에 계신 그대로 모시고 가매 다른 배들도 함께 하더니 37. 큰 광풍이 일어나며 물결이 배에 부딪쳐 들어와 배에 가득하게 되었더라 38. 예수께서는 고물에서 베개를 베고 주무시더니 제자들이 깨우며 이르되 선생님이여 우리가 죽게 된 것을 돌보지 아니하시나이까 하니 39. 예수께서 깨어 바람을 꾸짖으시며 바다더러 이르시되 잠잠하라 고요하라 하시니 바람이 그치고 아주 잔잔하여지더라. 40. 이에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어찌하여 이렇게 무서워하느냐 너희가 어찌 믿음이 없느냐 하시니 41. 그들이 심히 두려워하여 서로 말하되 그가 누구이기에 바람과 바다도 순종하는가 하였더라.
마태복음 8장 23~27절
23. ○배에 오르시매 제자들이 따랐더니 24. 바다에 큰 놀이 일어나 배가 물결에 덮이게 되었으되 예수께서는 주무시는지라 25. 그 제자들이 나아와 깨우며 이르되 주여 구원하소서 우리가 죽겠나이다 26. 예수께서 이르시되 어찌하여 무서워하느냐 믿음이 작은 자들아 하시고 곧 일어나사 바람과 바다를 꾸짖으시니 아주 잔잔하게 되거늘 27. 그 사람들이 놀랍게 여겨 이르되 이이가 어떠한 사람이기에 바람과 바다도 순종하는가 하더라
누가복음 8장 22~25절
22. ○하루는 제자들과 함께 배에 오르사 그들에게 이르시되 호수 저편으로 건너가자 하시매 이에 떠나 23. 행선할 때에 예수께서 잠이 드셨더니 마침 광풍이 호수로 내리치매 배에 물이 가득하게 되어 위태한지라 24. 제자들이 나아와 깨워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죽겠나이다 한대 예수께서 잠을 깨사 바람과 물결을 꾸짖으시니 이에 그쳐 잔잔하여지더라 25.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너희 믿음이 어디 있느냐 하시니 그들이 두려워하고 놀랍게 여겨 서로 말하되 그가 누구이기에 바람과 물을 명하매 순종하는가 하더라
▣핵심구절
39. 예수께서 깨어 바람을 꾸짖으시며 바다더러 이르시되 잠잠하라 고요하라 하시니 바람이 그치고 아주 잔잔하여지더라.
오늘 말씀을 듣는 모든 사람에게 인생의 항로가 예수를 믿고 천국으로 가는 항로가 되기를 바란다. 천국을 향해 가는 인생항로 과정에서 파도와 돌풍을 만나면 예수님을 깨워서 잔잔하게 되는 하나님 나라의 권능을 체험하는 믿음의 기도가 있기를 바란다.
1. 갈릴리 바다의 풍랑
이스라엘의 행정구역을 유다道, 사마리아道, 갈릴리道 3개 지역으로 나누었다. 예수님 당시 갈릴리 도에는 나사렛을 비롯하여, 약 400여개의 크고 작은 도시와 마을에 약 300만 명이 살고 있었다. 갈릴리는 팔레스타인의 북단으로 지금의 이스라엘 북부에 해당하는 지역이다. 예수께서 갈릴리 도에서 12제자 중 11제자를 이곳에서 택하였고, 행한 24회 이적 가운데 18회를 이 바다에서 행하였다.
갈릴리 도에 갈릴리 바다가 있다. 갈릴리 바다를 구약에서는 긴네렛 바다(수 13:27), 신약에서는 게네사렛 호수(눅 5:1), 갈릴리 바다(요 6:1), 대베랴 호수(요 21:1), 바다(막 4:39)라고 표현하고 있다.
갈릴리 바다는 큰 호수이다. 이 호수는 위로부터 헤르몬 산과 레바논 산에서 물이 요단강으로 흘러 갈릴리 호수를 이루고 다시 사해로 흐른다. 호수의 둘레는 53km, 남북으로 21km, 동서로 11km이다. 평균 수심은 약 26m, 가장 깊은 곳은 43m이다. 갈릴리 바다는 해수면보다 209m 낮은 지리적인 특성이 있다. 갈릴리 바다는 남쪽 사막에서 불어온 따뜻한 바람과 북쪽은 만년설인 2,814m의 헤르몬산과 갈릴리 바다보다 3배 큰 해발 1,000m로 가파른 경사를 이룬 골란고원에서 불어온 찬바람이 갈릴리 바다에서 만나면 갑작스런 돌풍을 일으키고 약 2m 정도의 파도를 일으키는 지형적인 구조의 특성을 갖고 있는 곳이다.
“다른 배들도 함께 갔다”고 표현하고 있다(막 4:36). 배가 출항하여 항해하기에 적합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 사람들은 갈릴리 바다에 대해서 잘 알고 있었다. 이들이 함께 항해를 했다는 것은 바다에서 계절풍과 돌풍으로 밤이면 수시로 풍랑이 일어나는 지형적인 특징을 이미 경험으로 알고 있었다.
우리의 인생은 세상에서 항해하다보면 누구나 수시로 풍랑을 만나야 하는 구조를 가지고 살아가고 있다. 전혀 예상치 못한 돌풍을 만날 수 있다. 생각지도 못한 큰 풍랑을 만날 수도 있다는 것을 암시하고 있다. 그러나 무서워하지 말라. 풍랑이나 돌풍이 다가올 때 예수님을 깨우라. 그러면 예수님께서 바람과 바다를 잔잔하게 하실 것이다.
우리가 인생을 항해하면서 일반적으로 만나는 풍랑은 건강의 문제일 것이다. 또한 경제적으로 어려운 문제일 것이다. 이것은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불어오는 풍랑이다. 그리고 예측하지 못한 사건과 사고의 돌풍도 있을 수 있다. 이때에 두려워하지 말고, 풍랑이나 돌풍을 잔잔하게 하시는 예수님에게 우리가 죽게 되었으니 살려달라고 기도하기 바란다.
예수를 향한 제자들의 외침에는 기도의 형태를 취하고 있다. 예수님에게 “네가 죽게 되었습니다. 살려주십시오.”라고 마음의 중심을 담아 절실하게 절박하게 전심으로 부르짖어 기도하는 것이다(막 4:38).
마가복음 4장38절 예수께서는 배 뒷부분에서 베개를 베고 주무시고 계셨습니다. 제자들이 예수를 깨우며 말했습니다. “선생님! 저희가 빠져 죽게 됐는데 모른 척하십니까?”(우리말성경)
이 사건은 일차적으로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가버나움에서 건너편 거라사(데카 폴리스) 지역으로 가기 위해 갈릴리 바다를 건너가다가 동편의 골란고원으로부터 갑자기 몰아쳐오는 돌풍과 파도를 잠잠하게 한 하나님 나라의 권능을 나타낸 사건이지만, 여기에는 여러 가지 상징적 진리의 요소들이 포함되어 있다.
2. 여러 가지 상징적 진리의 요소
1) 예수께서 건너편으로 가는 목적
예수는 그의 제자들과 함께 갈릴리 바다를 건너 “데카 폴리스”(열 성읍들의 지방)라는 이방인의 지역으로 가는 길이었다. 예수께서 가버나움에서 건너편 거라사(데카 폴리스)로 가는 목적은 하나님의 종말적 구원활동이 유대인과 이방인의 장벽을 넘어서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것을 바다를 건너는 것으로 표현하고 있다. 이것은 이방인 지역에서도 진행될 하나님 나라의 권능을 예고한 것이다.
저물 때 바다를 건너는 향해가는 것은 제자직의 삶을 표현하는 비유적 표현이다. 오늘날 예수의 제자도의 삶을 사는 사람들에게는 지역을 넘어서서 활동하는 영향력 있는 복음 증거자의 사명이 있어야 할 것이다. 인종이나 지역이나 차별하지 않고 은혜를 주시는 하나님 나라의 권능을 나타내야 할 것이다.
2) 하나님을 대항하는 악의 세력
하나님이 종말적 구원의 실행자가 이방인의 지역에 들어가려 하자, 이방인의 지역을 장악하고 있는 악의 세력이 막아서고 있다. 밤에 바다의 풍랑은 하나님을 대항하는 악의 세력으로 본다. 이것은 고대 근동의 사상이었다(시 74:14). 그리고 구약에서도 흉흉한 바다는 무질서와 불길한 세력의 상징으로 나타나고 있다(사 51:9~10; 시 89:8~10). 또한 바다의 풍랑은 하나님께서 구원을 부르짖는 신자들에 대한 위협을 상징한다.
예수의 권능은 바다의 경계를 제한하고(창 1:2, 6~9) 풍랑을 잠재우는데서 나타나는 하나님의 창조적인 권능이었다. 예수가 바람을 꾸짖어 잠잠케 했다는 표현이 바로 악의 세력과의 충돌과 정복을 암시한다.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바다의 세력에서 구원하는 것과 같이 예수도 그의 제자들을 풍랑의 위험에서 구원한 것이다.
날이 저물 때에(막 4:35) 예수의 제자도의 삶을 사는 사람들에게는 하나님 나라의 권능으로 악의 세력을 물리치는 믿음이 있어야 할 것이다. 복음을 비난하거나 반대하는 이들을 이겨낼 수 있는 영적인 무장이 있어야 할 것이다.
예수는 풍랑을 꾸짖어 잠잠케 한 후에, 제자들의 믿음 없음도 책망한다. “어찌하여 이렇게 무서워하느냐? 너희가 어찌 믿음이 없느냐?”(막 4:40). 제자들은 풍랑 속에서 예수의 창조자적 권능을 체험한 것이다.
3) 항해하는 배는 예수님의 교회를 의미한다.
바다의 풍랑은 종말적인 때에 일어날 격동을 의미한다(마 27:54; 28:2; 계 6:12). 교회의 상황에서 풍랑은 그 교회가 경험하던 고난 곧 회당으로부터의 추방, 로마관리들로부터의 핍박 그리고 이방인의 선교사역에서 일어날 충돌을 예고하는 것이다.
풍랑을 맞이한 교회의 상황에서도 제자들은 예수를 따르는 결단이 필요하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교회가 격동을 맞아할 때, 믿음으로 결단하고 예수를 바라보고 따르면 예수님의 놀라운 현존을 경험하게 된다는 것이다. 하나님 나라의 권능이 임하는 것을 체험한다는 것이다. 제자의 길이란 혹독한 십자가의 상황을 전제하고 있으며, 그런 속에서도 예수를 따라가는 것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3. 예수께서 제자들을 향하여
예수께서 제자들을 향하여 하신 말씀을 마가는 “너희가 어찌 아직도 믿음이 없느냐?”(막 4:40), 누가는 “너희 믿음이 어디 있느냐?”(눅 8:25), 마태는 “믿음이 적은 자들이라”(마 8:26)고 한다.
예수님께서 풍랑을 잔잔하게 하신 하나님 나라의 권능을 체험하는 과정에서 제자들은 두려워하면서 서로 수군거렸다. “도대체 이분이 누구시기에 바람과 파도까지도 복종하는가?”(막 4:41)라는 반응을 보인다.
제자들은 그동안 예수님께서 회당에서 안식일에 귀신을 꾸짖어 축출하여 귀신들린 자를 치유한 사건을 경험하였다. 시몬의 장모의 열병을 꾸짖어 치유하신 사건을 체험하였다. 한센병을 깨끗하게 치유하여 회복시킨 사건과 중풍병자를 치유하신 사건을 현장에서 봤던 이들이다. 그런데 아직도 예수님이 누구신지 모르고 있다.
이 말씀은 예수의 제자들의 믿음이 아직 풍랑을 헤쳐나 갈만한 충분한 믿음에 이르지 못한 것을 나타낸다. 제자들은 갈릴리 바다를 건너는 과정에서 예수께서 바다 위로 걸으시는 사건을 다시 경험하지만 마음이 둔하여져서 깨닫지 못하였다고 한다(막 6:45~52).
그러나 마태는 이 사건을 마가보다 구체적으로 기록하고 있다. 예수께서 바다위로 걸어오심을 본 제자들이 유령이라고 무서워하자 “나다 안심하라 무서워하지 말라”고 한다. 베드로가 만일 주님이시면 자신도 바다 위를 걷게 해달라며 배에서 내려 물 위로 걸어 예수께로 향하여 가다가 파도를 보고 무서워하자 물속으로 가라앉기 시작한다. 베드로가 “주여, 살려 주십시오!”라고 소리치자 예수께서 손을 내밀어 붙잡아 주셨다. 그때 배에 함께 있었던 사람들이 예수께 경배하며 “참으로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고백한다(마 14:22~33).
오늘날 예수의 제자가 되려면 자신에게 예수님이 어떤 분인가를 알아야 한다. 예수님을 개인적으로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고백해야 한다. 하나님께서 나를 사랑하여 예수님을 세상에 보내신 분이라고 믿어져야 한다. 예수님께서 나를 구원하려고 오신 분이라고 믿어지는 것이다. 그러므로 자신도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고 공개적으로 선언할 수 있어야 한다. 예수님은 나의 그리스도, 나의 구원자이십니다. 아멘
38. 예수께서는 고물에서 베개를 베고 주무시더니 제자들이 깨우며 이르되 선생님이여 우리가 죽게 된 것을 돌보지 아니하시나이까 하니 39. 예수께서 깨어 바람을 꾸짖으시며 바다더러 이르시되 잠잠하라 고요하라 하시니 바람이 그치고 아주 잔잔하여지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