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한호 총장의 목회서신 부사역자의 덕목(德目)과 금기(禁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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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군, 자네가 목사 안수를 받고 부사역자로 협력목회를 하게 된 것을 축하 하면서, 다른 문화 속에서의 부사역자의 역할 하나를 소개하고자 하네.
십여 년 전에 미국을 방문했다가 내가 유학시절에 출석하던 멤피스의 벨뷰침례교회를 찾은 일이 있었네. 그 교회가 교외(郊外)에 새 교회당을 지어 이전한 것은 알고 있었으나 유학시절에 출석하던 옛 교회에 대한 향수에 이끌려서 옛 교회를 방문하였네.
그런데 교회 이름이 “벨뷰침례교회”에서 “미시시피 부르바드 선교침례교회”로 바뀌었고 신자들도 흑인들로 바뀌었고 예배드리는 모습도 과거와는 판이하게 달라져 있었네. 남녀노소 구분 없이 다양하게 구성된 찬양대는 반시간이 넘게 신자들과 어울려 춤을 추며 찬양했고 말씀이 선포되는 동안 신자들은 아멘과 할렐루야로 뜨겁게 화답하는 것을 보았네.
한 시간이 넘게 계속된 설교의 마지막 부분에서 담임목사는 설교 때마다 똑같이 반복하는 5분 정도 길이의 “클라이맥스 상용구”를 외쳤고 신자들은 그 순간을 기다라고 있다가 일어서서 박수를 치며 열광적으로 응답하였네. 설교의 클라이맥스는 마치 춘향전에서 어사가 출두하는 장면이나 심청전에서 심 봉사가 눈을 뜨는 장면과 같이 청중을 기다리게 하고 열광하게 하는 것 같았네.
이 때 사회자로 또는 보조자로 강단에 오른 부사역자의 역할은 설교를 하는 동안 목사의 음성이 가라앉거나 신자들의 반응이 시들할 때면 일어나서 설교자를 향해 박수를 치며 응원을 보내거나, 회중을 향해 두 팔을 높이 들고 할렐루야를 선창해서 신자들의 응답을 이끌어내는 것이었네. 나는 이와 같은 광경을 보면서 다른 의미에서의 부사역자의 역할을 생각하게 되었네.
한국 교회는 물론 우리 주변에서도 심심찮게 담임목사와 부사역자 간의 갈등을 보게 되는데 그들이 공통적으로 잘못 생각하는 것은 그러한 갈등을 옳고 그름의 잣대로 판단하려는 것이었네. 그러나 그것은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라 책임소재에 관한 문제이며, 이 경우 당연히 교회행정에 책임을 가진 담임목사의 권위와 역할이 존중되어야 하네. 자네는 행여 옳고 그름으로 따지거나 불평에 동조해서는 안 되네.
부사역자는 언제나 담임 목사를 존중하고 협력하면서 언제인가 시작하게 될 자신의 목회를 꿈꾸며 “모든 것을 배운다”는 겸손한 자세를 가져야 하네. 나는 서울침례교회에서 나의 스승이신 담임 목사님 아래서 만13년 동안 집사로 또는 협동목사로서 목회와 삶을 배웠으나, 그 때 더 배우지 못하고 더 헌신하지 못한 것이 안타까울 뿐이네.
오늘날 성공한 목회자들은 예외 없이 부사역자 시절에 정직하고 성실하게 인내한 이들이라는 사실을 기억하게.
L군, 이 말을 명심하게. 부사역자의 제 일의 덕목은 연령과 경륜을 초월해서 담임목사에게 순종하고 협력하는 것이며, 제 일의 금기는 담임목사와 다른 목소리를 내서는 안 된다는 것이네.
침례신문 2011년 10월 7일(금) 제979호 6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