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무엇이 세상을 움직이는가?
아침에 눈을 뜰 때마다 TV와 신문은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온 세계에서 일어나는 수많은 사건들을 쉴 새 없이 전하고 있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등 다양한 분야에서 우리가 미처 소화하지 못할 엄청난 분량의 소식들이 파편처럼 쏟아지는 것이다. 결코 질서정연하지 않을뿐더러 서로 관련도 없는 듯이 보이는 이 수많은 사건들이 모여서 역사를 만든다. 하지만 모든 사건들이 역사를 구성하는 것은 아니다. 대부분의 사건은 사라져버리고 세계의 흐름에 중요한 영향을 미친 일들만 역사로 정리된다. 물론 E. H. 카가 역사란 ‘역사가와 그 사실들의 지속적인 상호작용의 과정, 현재와 과거의 끊임없는 대화’라고 말한 것처럼 역사가 역시 한 시대와 사회를 살아가는 인간이기 때문에 과거를 해석하고 평가할 때 당대의 제약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그렇다고는 해도 우리가 역사서에서 마주치는 사건들은 세계의 흐름을 좌우한 중요한 사건들이라는 점은 분명하다. 이렇게 세계사의 큰 흐름을 바꾼 굵직굵직한 사건 또는 현상을 보다 보면 의문이 떠오른다. 세계사의 흐름이 기로에 서 있을 때 그 방향을 결정하는 것은 무엇인가, 과연 어떤 힘이 세계를 지금의 상태로 이끌어온 것일까, 그 흐름을 만들어내는 개인 혹인 집단은 과연 어떤 생각에서 그렇게 행동했을까 등등이다.
사이토 다카시의 ‘세계사를 움직이는 다섯 가지 힘’은 이런 관점에서 세계사에서 나타난 현상 또는 결과보다는 수많은 사람과 집단과 국가가 상호작용하여 만들어내는 거대한 흐름을 결정한 동력에 초점을 맞춘 것이다. 또는 먼 과거부터 현재까지 세계사의 긴 흐름을 읽는 다섯 개의 키워드 또는 창이라고도 할 수 있다. 그래서 이 책은 대개 역사서로 소개되고 있지만 일반적 의미에서의 역사서로 분류하기는 좀 어려울 듯하다. 이 책은 보통의 역사책처럼 시간의 흐름에 따라 세계사적 사건을 다루고 있는 것도 아니고, 특정한 주제의 역사를 서술하지도 않는다. 저자가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역사 그 자체가 아니라 역사를 만들어온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인 것이 무엇인가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재미있는 추리소설처럼 언뜻 보기에 관련이 없는 사건들로 갈피를 잡을 수 없는 상황을 꿰뚫어 볼 수 있는 결정적인 실마리를 찾으려는 것이 저자의 의도이며, 이 책에서는 세계사의 세세한 전체 이야기가 아니라 그 흐름을 한 줄기로 연결할 수 있는 벼리를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책 제목에서 ‘세계사’보다는 ‘힘’에 방점을 찍고 보는 것이 옳을 것이다. 사이토 다카시는 도쿄 대학 법학부를 졸업한 후 동 대학원에서 교육학 연구과 박사과정을 이수하고 메이지 대학 문학부 교수로 재직 중이다. NHK와 후지TV 등에서 교육 프로그램을 직접 기획하고 연출하는 등 여러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으니, 역사분야의 전문가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오히려 저자의 이런 경험과 비역사학도로서의 관점이 역사를 자신만의 시각으로 바라볼 수 있게 한 것인지도 모른다.
저자는 이 책에서 세계사의 흐름에 중요한 역할을 한 인간의 감정에 초점을 맞추고, 그 감정이 만들어낸 다섯 가지 힘으로 욕망, 근대화, 제국주의, 이데올로기, 종교를 들고 있다. 다섯 가지는 세계사를 움직여 온 힘이라고 볼 수도 있고, 긴 세계사의 흐름을 크게 조망할 수 있는 창이라고 할 수도 있다. 따라서 이 힘들은 상호 독립적으로, 또는 배타적으로 작용하는 것은 아니다. 저자가 제시하는 다섯 가지 힘을 따로 떼 내어서 읽기 보다는 각 요소들이 어떻게 서로의 원인이나 결과가 되는지, 서로 어떤 관계 하에서 영향을 주고받는지를 생각한다면 더 풍부한 독서가 될 것이다.
■ 저자가 가장 앞에 내세운 힘은 욕망이다.
욕망은 넓게 해석하자면 나머지 네 개의 힘을 모두 포괄하는, 혹은 다른 동력의 기저에 존재하는 힘이라고 할 수 있다. 세상에서 인간이 벌이는 거의 모든 일은 어떤 형태로든 인간의 욕망에서 출발하기 때문이다. 이 욕망을 상징하는 것으로 커피와 홍차, 금과 철, 브랜드와 도시를 들고 있다. 도대체 커피와 홍차가 인간의 욕망, 나아가 세계사와 무슨 관계가 있는가? 발자크가 밤낮을 가리지 않고 집필에 몰두하면서 진한 커피를 연거푸 마셨던 것처럼 커피는 인간이 한계를 벗어나 욕망을 추구할 수 있도록 의식의 각성을 유지해준다. 반면 홍차는 커피와 대조적으로 휴식을 취할 때 마시는 음료이다. 저자는 더욱 분발하기 위해 커피를 마시는 문화와 휴식을 취하기 위해 홍차를 마시는 문화의 차이를 지적하고 있다. 따라서 커피가 소개된 이후 서구에서 커피에 대한 수요가 늘면서 커피를 마시는 국가와 커피를 재배하는 국가의 격차가 주목받기도 하지만, 사실은 커피에 대한 욕망이 세계사를 움직였다기보다 커피는 끊임없이 성장, 발전, 확대를 지향해온 인간의 욕망을 상징하는 물질로 볼 수 있다. 이렇게 커피가 각성시킨 의식이 욕망하는 보다 구체적인 대상이 금이며 철은 욕망을 실현하는 무력 또는 힘을 상징하는 도구가 된다. 금에 대한 욕망이 끝을 모르는 망망대해로의 탐험을 가능하게 했고, 철로 대변되는 무력으로 신대륙을 수탈했다. 이렇게 축적된 부는 실제적인 필요를 넘어서서 브랜드라는 기호를 소비하면서 점점 브랜드화되는 도시에 집중되어 문명의 변화를 촉진했다.
■ 두 번째 힘은 근대화이다.
근대화를 추구하는 힘이 세계의 성격을 규정하는 동력의 하나라는 것이다. 저자는 근대화를 유럽화 또는 서구화의 압력으로 해석하면서 유럽문명의 근간인 지중해 문명은 로마제국의 확장에서 보듯이 가속력이라는 기본적인 속성을 가지고 있으며 이것이 근대화, 즉 유럽화의 정체라고 주장한다. 그런데 근대화는 중세의 가사상태에서 르네상스를 통해 인간이 자유로워진 것이고, 이는 종교개혁이 권력을 독점한 교회로부터 인간을 독립시켰기 때문에 가능했다. 또한 개신교의 칼뱅신학을 수용한 나라들이 카톨릭 국가에 비해 자본주의가 더 발달했다고 하는데, 베버에 따르면 칼뱅이 주장한 예정설이 자본주의 속성과 밀접한 관계가 있기 때문이다. 신은 구제할 인간을 미리 결정했고 구원을 확인하기 위해 열심히 일하며 직업을 소명이자 신에 대한 봉사로 간주하며, 이를 통해 축적한 부는 소비보다는 일의 확대, 즉 투자에 사용됨으로써 부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 이것이 자본주의 탄생의 모체이자 메커니즘이라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즉 자본주의와 근대화는 절묘한 조합이 되었다는 것이다.
■ 세계사를 보는 세 번째 창은 제국주의이다.
제국주의는 민족의 정체성과 민족 간의 수탈과 관계있다. 제국이란 갈 수 있는 데까지 가고 싶다는 욕망과 자신의 우월함을 보여 주고 싶다는 욕망이 맞물려 만들어진 것이다. 페르시아와 스파르타의 전쟁에서처럼 지배 또는 항거에 따르는 실익이 거의 없을지라도 상대방을 지배하고자 하는 욕망 또는 자신의 정체성을 지키고자 하는 욕망 때문에 목숨을 건 전쟁이 일어나기도 했다. 결국 알렉산드로스 대왕처럼 제국의 건설과 확장에 대한 욕심이 자신의 목숨을 앗아갈 수도 있지만 말이다. 또한 제국을 유지하려면 중심부와 주변부의 균형이 필요한데, 중앙이 주변에 주는 혜택 또는 주변에 대한 착취가 균형을 잃으면 제국은 무너지기 시작했다는 것을 몰락한 제국의 역사로부터 확인할 수 있다. 나아가 저자는 제국주의를 키워드로 페르시아부터 현대의 글로벌 기업까지를 아울러 설명한다. 마이크로소프트, 구글과 같은 글로벌 기업과 글로벌화된 금융에서 제국의 야망을 찾아볼 수 있다. 과거의 제국주의가 식민지 지배를 통해 발현되었다면 현대에는 글로벌 기업을 통해 구체화되고 있는 것이다.
■ 세계사를 움직인 네 번째 동력을 저자가 몬스터, 즉 괴물이라고 이름붙이고 있는 이데올로기 또는 지배철학인데, 그 예로 자본주의, 사회주의, 그리고 파시즘을 들고 있다.
먼저 현대 사회는 마르크스가 지적한 것처럼 끊임없이 자기증식을 추구하는 자본이 지배하고 있다. 그런데 자본주의의 속성은 경제를 성장시킨다는 긍정적 측면도 있지만 끝없는 증식의 욕망으로 인해 ‘빈부의 격차’를 심화시키는 부작용도 낳고 있다. 이런 부작용에도 불구하고 자본주의의 기관차가 멈추지 않는 것은 자본주의가 인간의 욕망이라는 본성에 기초한 시스템이기 때문이라고 저자는 주장한다. 자본주의가 번성하고 있는 것은 자본주의의 대항마로 냉전의 한 축을 이루었던 사회주의가 몰락한 것도 한 원인으로 볼 수 있는데, 사회주의가 무너진 것은 이상적인 세계를 건설하겠다는 목적으로 인간의 본성을 제약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하지만 사람들의 불안을 자극하여 소비를 조장하는 시스템, 실체적인 소비욕구가 충족되고 난 다음에는 브랜드에 대한 욕망과 같은 기호를 소비하도록 충동하는 자본주의 체제가 그 자체로 바람직하다고도 할 수 없다는 것이 저자의 시각이다. 자본주의의 적은 지금은 세력이 거의 사라진 사회주의가 아니라 자본주의를 지탱하는 욕망이라고 저자는 주장하는데, 이는 지금의 글로벌 금융위기를 보더라도 일리가 있는 지적이다. 한편 사회주의는 자본주의에 대한 비판에서 출발했으나 이상사회 건설이라는 목표를 달성하지 못하고 자본주의와의 경쟁에서 밀려나고 말았다. 그래도 세계사에는 큰 흔적을 남겼다. 사회주의는 반증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과학이 아니라는 영국의 철학자 칼 포퍼의 주장에도 불구하고 러시아 혁명 이후 사회주의 세계로 확산되면서 인류에게 큰 영향을 미치게 된다. 지금은 사회주의 붕괴가 자체의 모순으로 인해 필연적이었다고 말해도 크게 이상하게 들리지는 않지만, 베버는 사회주의가 확산되던 초기에 관료제의 부패로 사회주의가 몰락할 것이라고 예언하는 통찰력을 발휘했다. 관료제는 자본주의 체제에서도 나타나지만 사회주의에서는 더욱 심화될 것이라고 보았기 때문이다. 한편 1차 세계대전 이후의 혼란기에 불안심리를 파고들어 세력을 확장한 전체주의는 나찌즘, 파시즘 등을 통해 인류에게 큰 비극을 초래했다. 합리적인 이성으로는 받아들일 수 없는 사상도 극도의 불안이 지배하는 상황에서는 저자가 표현한 대로 괴물(몬스터)처럼 세계를 뒤흔들 수 있는 것이다.
■ 마지막으로 종교가 있다.
종교는 합리적으로는 설명할 수 없고 마르크스를 아편이라고까지 비판했지만, 종교의 힘, 아니 종교를 믿는 인간의 힘 역시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세계사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다. 과학의 발전에도 불구하고 과학의 관점에서 보자면 비합리적인 종교에 대한 원리주의적 믿음이 오히려 늘고 있는 것은 종교가 고달픔 현실을 견디고 새로운 희망을 품게 하는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종교는 개인적 위안을 넘어서 때로는 세계의 역사를 바꾸기도 한다. 세속의 권력이 종교의 권위에 굴복한 상징적 사건인 카노사의 굴욕이나 유럽 역사를 피로 물들인 종교전쟁 등은 종교가 인간의 사고와 행동에 깊숙이 개입해왔다는 것을 말해준다. 또한 12세기의 십자군 전쟁을 통해 유럽으로 유입된 아라비아 문화가 르네상스의 맹아를 싹틔우고 유럽 근대과학의 모태가 되었다. 2001년의 911 테러 이후 이슬람 하면 테러를 연상하게 되었지만, 근대 이전까지 이슬람 문화는 서양을 앞섰기 때문이다. 이런 사실로부터 종교가 세계사의 흐름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중동지역의 분쟁 등 종교를 배경으로 한 문명 간의 갈등은 지금도 진행 중이어서 현대에도 종교는 여전히 중요한 위치를 점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 책은 이상에서 정리한 다섯 가지 주제를 중심으로 세계사에서 있었던 일들은 읽기 쉬운 문장으로 편하게 서술하고 있다는 점이 장점이다. 이 책에 대해 우석훈 박사는 백과사전적 지식의 귀환이라고 평하고 있는데, 세계사에 대한 지식이 부족한 사람도 쉽게 읽을 수 있거니와 세계사를 조금 다른 시각에서 크게 조망해보고자 하는 이들에게도 도움이 될 만하다. 세계사의 내용을 재미있게 접할 수 있을 뿐 아니라 과연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가 어떤 힘에 의해서 움직이고 있는지 다시 한 번 생각해볼 수 있는 계기도 될 것이다. 특히 글로벌 금융위기가 전 세계를 휩쓴 후에 위기 이후의 세계에 대한 논의가 활발한 시점에서 보다 넓은 시야를 가지고 미래를 내다보도록 하는 자극을 제공한다. 많은 일들이 쏟아지는 세상을 살다보면 매일 부딪히는 일들이 묻혀 큰 시야를 잃어버리기 쉽다. 하지만 지금처럼 큰 변화가 진행 중일 때에는 그에 걸맞은 큰 시야로 변화를 조망하려는 자세가 필요하다.
물론 이 책에는 저자의 시각이 강하게 반영되어 있다. 전체적으로 인간의 본성과 근대화라는 관점에서 세계사, 특히 근대 이후의 역사를 이야기하고 있지만, 근대화나 서구 문명에 대한 저자의 평가가 그리 우호적인 것 같지는 않다. 이런 점에서 이 책의 내용에 모든 사람이 동의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이 책의 가치가 낮아지지는 않는다. 저자의 분석과 평가를 비판적인 시각에서 보면서 자신만의 해석을 시도해보는 것도 이 책을 읽는 즐거움을 더할 것이다.
(삼성경제연구소 박 현수 수석연구원 요약)
